한사람의 국민으로서, 또 마케팅이란 화두를 일과 관심사로 항상 부여잡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자화상을 풀어나가는 책은 늘 주목의 대상이다.
그간의 비슷한 류의 책들이 주로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주제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책에서 저자는 '습속'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삼았다. 굳이 나 나름대로 풀어서 이해하자면 '일반적인 성향' 혹은 '행동양태' 정도가 되겠다. '정체성'이 '한국인은 이러이러해야한다.'라는 당위의 뉘앙스를 다소 품고 있다면, '습속'이라는 개념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들 이면에 감추어진 성향과 그 배경을 담담히 풀어가고자 하는 저자의 색다른 취지를 드러내는 단어라 생각되었다.
저자인 진중권교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그의 글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읽어본 저서도 이책이 처음이었다. 몇달전에 TV토론회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저자 장하준교수와 한국경제 현안에 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토론회에서는 합리적으로 수긍이 가는 주장을 펼쳤던 장하준교수와 대비되어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진것이 보여서 다소 실망하였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책은 두가지 관점에서 분주한 일상에 곰곰히 생각해보게하는 참신한 시각을 던져주었다.
한가지는, 쏟아지는 정치 사회 뉴스들 속의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에 몇가지 패턴과 과거의 유산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가지는, 그러한 패턴과 유산이 인터넷 사이버스페이스라는 환경과 만났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책은, 근대화 / 전근대성 / 미래주의 의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약하면,
- 근대화 : 한국사회는 일제강점과 군사개발독재로 인해 서구사회가 거친 점진적인 근대화과정을 밟지 못하고 급격히 왜곡되게 잘못된 근대화를 겪게 되었다.
- 전근대성 : 왜곡된 근대화과정으로 인해 한국인은 몸도 고달프고 마음도 고달픈 지치고 안스러운 수동적인 불안상태가 잠재되어 있다.
- 미래주의 : 한국이 인터넷강국이라고는 하나, 엄밀히는 인터넷 인프라의 강국이고 그속의 문화나 컨텐츠 면에서는 서구에 비해 아직도 낙후된 모습이다.
요약하고 보니 암울한 논리전개가 되고 말았는데, 실제로 개개의 에피소드나 단상 속에 녹아있는 저자의 시각은 한국사회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이책의 장점이다. 참신한 시각(다소 편협할 지라도!)과 문제의식은 언제나 생각의 균형과 아이디어 촉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 아니겠는가.
저자의 독일 유학생활 경험, 미학 전공 지식 그리고 자칭 좌파적 입장이 이책 시각과 예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이책의 전체 구성은 다소 산만하기도 하다. 소소한 예시와 주장들을 나열식으로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곰곰히 곱씹어봤던 저자 주장중 인상깊은 세가지만 뽑아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 카리스마 : 고대사회는 모든 사회/자연현상(가뭄, 홍수 등)을 모두 왕의 탓으로 돌렸다. 작금의 대통령탓하기 및 과거대통령 향수는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비논리적 구술중심문화의 특징때문이다. 모든 사회적문제는 논리적이고 문자문화적으로 분석해봐야 한다.
- 공포와 습관 : 한국인은 과거 한동안 이념대립과 국가폭력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는 생존정글로 내몰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혁신과 창안이 설자리가 없으며 안위를 찾아 이리저리 쏠림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거대한 보수성을 구성한다.
- 프로그래밍 : 원래 디지털 사고방식은 태고적 아시아에서 나왔다. 태극 4괘 등이 예이다. 하지만 수천년동안 동양은 이것을 '주술'로만 사용하였고 서양은 수천년 늦게 발견한 이진법이지만 곧바로 '기술'에 사용하였다. 이것이 두문명의 운명을 갈랐다. 빌렘 플루서는 미래의 인간사회가 '프로그래밍을 하는자'와 '프로그래밍을 당하는자'로 나뉠것이라고 보았다. 게임에 열중하는 젊은 세대는 어느쪽일까? IT강국 한국은 '소비'강국이지 아직 '생산'강국이 아니다.
카리스마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일리있는 생각이지만, 현대적의미의 리더쉽에 대한 관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 하다. 저자가 미학자이며 좌파적시각이고 난 경영학 먹물을 약간이나마 먹어봐서 차이가 나는 걸까?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는 지식의 적용과 성과에 책임을 지는 존재"로 정의한바 있다. 나는 이 견해에 동조하는데, 결국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되, '성과에 대한 책임'에는 어느 리더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겠다.
공포와 습관에 대한 저자의 인식에 무척 공감한다. 소위 벤처사업을 해봤고, 현재도 벤처에 몸담고 있는 나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제도적으로도 그러하며,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풍토 문제) 환경에 공감하며 또 이로인한 후배세대의 무조건적인 공무원/공기업/대기업 위주 열망에 우려한다. 어떠한 정책으로 이문제를 풀어갈 것인가는 매우 어렵겠으나 치열하게 매달려 풀어가야만 하는 한국사회의 숙제이다. 취업/육아/주택/노후 문제 해결없이 혁신과 창안과 벤처의 활성화는 요원하다. 내가 느끼기에 현재 우리사회에는 열정은 없고 유행과 쏠림만 있다.
프로그래밍 화두에 있어서는,
결국은 감각적 유행의 속도가 아니라 기술이든 인문학이든 책읽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경쟁력이 첨단 사회에서도 문화와 컨텐츠 주도권의 근간이 된다는 논지인데, 깊이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저자가 책의 결말부분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금했다.
이책 내용의 꼭지들이 나열식이기 때문에, 아무리 현재 습속을 관찰하고 나열하는 취지라 하더라도 명색이 유명저자가 한권의 책을 출간할 때에는 뭔가 "그러므로,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앞으로 이러이러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최소한의 방향성은 결말에 제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나열식으로 그대로 끝나서는 완결성이 없지 않겠는가. 저자의 다소 좌파적 시각으로 인해, 결국 사회시스템 개편의 측면에서 방향성을 제시할까? 등등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놀랍게도 에필로그와 결언부의 타이틀은 "너 자신을 디자인하라."이다. 저자자신도 결언부 사이사이 내심 씁슬한 느낌을 내보이기는 하나, 결국 개인의 문제로 귀착된 것이다.
미래 한국인은 타율적 신민에서 자율적 기획인으로, 타율적 성과주의에서 자율적 유희주의로 변모해야하며 디지털 도마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내용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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